연암을 읽는 두 가지 코드,『사기』와『장자』」,민족문학사연구, 통합 30호 vol.30, 2006
따라서 연암 또한 장자에 대한 높은 관심을 통해 작품 속에 그것을 녹아내었다. 다음은 도강록(渡江錄)의 한 부분이다.
만사가 평등이면 질투도 없을 것이 아닌가?
나는 장복에게 물었다. “장복아, 너는 죽어서
◈ 연암 박지원의 사상, 문학관, 연암 박지원의 작품분석 ◈
1. 연암 박지원의 생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95)은 조선 후기의 대문호(大文毫)이자 실학의 일파인 북학파의 중심인물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5세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752년 16세에 전주이씨(全州李氏)
시작됨을 알 수 있고 소수의 선각적 엘리트에 의하여 견인되었던 조선후기의 상황을 바탕으로 연암 박지원의 저술<호질>과 <금수회의록>이 의미하는 바와 박지원의 사상을 통하여 이 작품들의 풍자하는 대상을 파악하고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 현대사회의 공통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연암의 대표적 작품인 호질, 양반전, 허생전 등도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나온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 같은 조선 후기 사회의 계층적 변혁의 징후가 나타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박지원의 사상 중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만 알고
유식층을 풍자·비판하기도 하였다.
연암소설의 풍자는 '사대부계층을 통한 양반 허구성 풍자'와 '천민계층을 통한 인재등용의 모순', '교우관계의 거짓', '신선사상의 비현실성', '열녀제의 비판' 등 다양한 특색을 지닌다. 이중 [허생전], [양반전], [호질]은 사대부계층을 통한 풍자에 속한다.
호질』은 우언(寓言)으로서 대화 형식에 의해 서술자의 의도를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지원은 \"후지\"에서 이 글은 근세 중국인이 비분강개하여 지은 것으로서 청조(淸祖)의 위선적인 정책과 그러한 청조에 곡학아세하며 일신의 안주를 추구한 한족(漢族) 출신 유학자들에 대한 풍자 및 비판이라고
연암 골짜기에 들어가 머물면서『열하일기』25편을 저술했다. 이 작품은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본 것의 내용을 담았고,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
작품에서 상상적 문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정조 시대의 정신적 조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음은 문체 문제로, 문체의 혼란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는 쉽게 서술될 수 없으나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전통적 문장(고문)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리라
대한 승리로 불리어지는 발자크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예가 되는 것이다. 연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화·현벌의 최상층 귀족계급에 속해 있었던 자신의 계급성과 그의 창작에 담긴 개혁 담론의 급진성이 양립할 수 없는 간극을 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자주의에 대한 그의 양면가치적 관심
작품으로는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김부식의 『삼국사기』열전이 있다. 공식 사서에 오르는 열전은 사람의 행실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이다. 인물의 선악을 분명하게 구분해 후대 사람들을 감계하는 데 쓰도록 해야 역사를 서술하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여겨 열전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열전은 그 시